월 (Mon)

사무엘기상·하 결정 연구 –8주차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됨

아침의 누림

삼하 7:12, 14
12 네 날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뒤를 이을 네 씨를 일으킬 것인데, 그 씨는 네 몸에서 날 것이며, 나는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들의 막대기와 사람들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할 것이다.

대상 22:10
10 그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리니,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의 왕국의 보좌를 영원토록 견고하게 할 것이다.’

9:7
7 다윗의 보좌 위에서 그분의 왕국 전역에서 그분의 통치가 끝없이 확장되고 그분의 화평도 끝이 없으리니 이제부터 영원히 정의와 의로 왕국을 굳게 세우시며 붙드시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 일을 이루시리라.

11:1-3
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 열매를 맺으리라.
2 그분 위에 여호와의 영께서 머무시리니 곧 지혜와 명철의 영 조언과 능력의 영 지식의 영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라.
3 그분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시리라. 그분은 눈에 보이는 대로 재판하지도 않으시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결하지도 않으시리라.

3:17
17 보아라,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를 기쁘게 하는 아들이다.”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서 ‘네 씨’는 문자적 으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키는데, 그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건축하였다 (왕상 5:5, 8:15-20, 대상 22:9-10, 28:6).

그러나 사무엘기하 7장 14절 상반절을 인용한 히브리서 1장 5절 하반절에 따르면, 다윗의 씨는 사실상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이며 (히 1:5하-6),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둘 다 지니신 분이시다. 이 절의 솔로몬은 그분의 예표이다. (삼하 7:12 각주 1)

사무엘기하 7장 12절에 있는 ‘네 씨’와 14절에 있는 ‘나의 아들’이라는 단어는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는 것, 즉 사람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3절부터 4절까지에 있는 바울의 말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부활 안에서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이다. … 이 말씀은 또한 마태복음 22장 41절부터 45절까지에 있는 주님의 질문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신 동시에 다윗의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실 수 있는지, 즉 신성과 인성 이라는 두 본성을 지니신 놀라운 인격이신 하나님-사람이실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절들은 사람의 씨, 곧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계시한다. 하나님 자신 곧 신성하신 분께서 사람의 씨, 곧 사람인 다윗의 씨가 되셨다. 이 씨는 하나님-사람 곧 여호와 구원자이신 예수님이며(마1:18-21, 딤후 2:8), 그분은 다름 아닌 그분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눅 1:35). 사람의 씨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해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삼하 7:14 각주 1)

오늘의 읽을 말씀

마태복음 22장 41절과 42절은 이렇게 말한다. “바리새인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누구의 자손입니까?’ ”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 질문을 하셨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 (마 22:42). 의심할 바 없이, 성경에 따르면 이 대답은 정확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다윗이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까? ‘주님께서 나의 주님께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밑에 둘 때까지 나의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 되시겠습니까?”(43-45절) 여기에서의 질문은 어찌 증조부가 증손자에게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성경 지식을 반쪽 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분의 인성에 따라 다윗의 자손이신 것만 알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나머지 반쪽은 알지 못했다. 마태복음 22장 43절에 영이 언급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의 영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알수 있음을 가리킨다(엡 3:5).

그리스도는 얼마나 놀라우신지! 그분은 하나님 이시자 사람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다윗의 자손이시다. … 그분은 가장 위대하기도 하시며 가장 작기도 하시다. 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다! 우리는 이러한 정도로 그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에 대한 지식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주님, 오직 당신만이 가치 있는 분이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이 하나님은 틀림없이 당신이실 것입니다. 만일 참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당신이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구원자이시고 구속자이시며 생명과 빛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 수는 있어도 그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이시고 또한 아버지라 불리신다는 것을 안다(비교 사 9:6).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한 인격 안에 신성한 본성과 인간 본성을 모두 지니신 분이신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 분은 두 본성과 두 생명을 가지신 한 인격이시다. 그러나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역량 밖의 일이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믿으며, 그분께서 너무나 놀라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단순히 그분을 찬양한다! 우리는 놀라우신 분이 신 그분을 경배하고 받아들이며 누리고 체험할 필요가 있다.(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59장, 695, 697-699쪽)

추가로 읽을 말씀: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5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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