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Thu)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인 건축을 위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 – 3주차

부패함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

아침의 누림

2:4-5
4 그러나 너에게 책망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고 회개하여 첫째가는 일을 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갈 것이며, 네가 회개하지 않는 한 너의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다.

고후 11:2-3
2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여러분에게 질투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을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순수한 한 처녀로 드리려고 약혼시켰기 때문입니다.
3 전에 뱀이 간교하게 하와를 속였던 것처럼, 나는 다만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단순성과 순수성을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12:30-31
30 그러므로 그대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그대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31 둘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너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이 없습니다.”

21:17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 그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여, 그대가 나를 사랑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그대가 나를 사랑하십니까?”라고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먹이십시오.

바울이 에베소서 6장 24절에서 한 말은 장차 일어날 문제의 징조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2장 2절부터 5절까지에서 주님께서 책망하신 것에 나타난 것처럼,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사랑이 쇠퇴하려 하고 있었다. 따라서 에베소서 6장24절에 있는 결론의 말은 은혜가 함께하기 위한 조건을 추가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부패함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그들의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실 것이었다(5절). 등잔대의 빛은 생명(생명은 곧 은혜임)의 빛이다. 이 생명의 빛이 주님에 의해 옮겨지는 것은 그들이 첫째가는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빛, 곧 은혜의 빛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첫째가는 사랑을 회복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 두 절에서 우리는 에베소의 성도들에 대한 주님의 느낌을 볼 수 있다. 주님은 그분을 향한 그들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이런 이유로, 사도는 그의 서신서에서 거듭 ‘사랑 안에서’라고 말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사도는 끝맺는 축복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패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것은 에베소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은혜가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베소서에서 본성령 안에 있는 교회의 생활과 책임, 22장, 418-419쪽)

오늘의 읽을 말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은혜이신 주님을 누린다. … 에베소서에 계시된 주요 요점 가운데 한 가지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 곧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것이다. 몸의 방면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취하는 것이고, 아내의 방면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고, 또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 서신의 수신자인 에베소에 있는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서 실패했다. 바로 이러한 실패가 역대로 교회가 실패한 근본 원인과 주된 이유이다(계2-3장).(신약의 결론, 21권,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누림 ― 서신서들, 345장, 300-301쪽)

바울은 현명했기 때문에, 교리에 관해 유대교도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 대신에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을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순수한 한 처녀로 드리려고 약혼시켰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방식은 얼마나 놀라운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있는 바울의 말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며 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때때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만진다. 우리가 메시지를 몇 쪽 읽고 나면, 우리 안에는 주 예수님을 향한 부드러운 느낌이 일어나고, 우리는 그분께서 얼마나 사랑스러우시고 귀하신지를 다시금 새롭게 깨닫는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신학적이고도 교리적인 생각은 복잡해서 삼일성이나 그 영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양태론에 대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사역이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라이프 스타디》의 어느 한 메시지의 일부를 읽고 나면, 다시 한번 신랑이신 주 예수님께서 사랑스러우시고 귀하시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오, 주 예수님. 사랑스러운 신랑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사역과 당신의 회복으로 인하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 유대교도들은 의문을 일으키지만, 진정한 사역은 우리의 신랑이신 주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의 유대교도들은 믿는 이들을 흔들어서, 주 예수님을 단순하게 사랑하는 데서 멀어지게 하려고 힘을 다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모세의 율법과 신언자들에게서 돌이켜서 우리의 관심을 주 예수님께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11장2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순수한 한 처녀로 드려지려고 약혼했음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스러우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남편이시고, 저는 그분의 처녀의 일부입니다. 저는 교리나 신학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저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해 주는 사역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분은 제가 사랑하는 유쾌하고 소중한 분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고린도후서 라이프 스타디, 52장, 487-488쪽)

추가로 읽을 말씀: 에베소서에서 본 성령 안에 있는 교회의 생활과 책임, 22장; 고린도후서 라이프 스타디, 52-53장; 신약의 결론, 21권,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누림 — 서신서들, 3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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