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 (2) – 5 주차
하나님의 형상과 보배이신 그리스도
아침의 누림
롬 9:23
23 하나님께서 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어찌하겠습니까?
갈 2:20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고전 2:10
1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영을 통해 그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은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이들까지도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갈 2:20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빌 1:19-21
19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21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빌 2:5-6, 13
5 여러분 안에 이 생각이 있도록 하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6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13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안에서 운행하시어, 여러분이 뜻을 세우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행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를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 생명나무는 먹기에 좋았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먹을 수 있고, 자신이 생명의 떡(35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먹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먹는 것을 담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 무엇이든지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 안에 담길 뿐 아니라 동화되어 우리 자신의 요소가 된다. 심지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된다. 그러므로 영양사들은 “여러분이 먹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단지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먹는 그릇이자 우리가 먹는 것을 동화하는 그릇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먹기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분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분은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먹고 동화하는 그릇들이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되신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로마서 9장 21절과 23절은 우리가 귀하게 쓰일 그릇들이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긍휼의 그릇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 어느 날 나는 영광으로 가득 찰 것이고, 영광 안에 거하며 영광의 하나님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긍휼의 그릇들이다(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0, 149쪽)
오늘의 읽을 말씀
신약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그분께 계속 열어 두는 그릇을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절대적으로 열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전히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이 바로 타락한 본성을 지닌 타고난 생명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만, 여전히 주님을 극도로 사랑하며 항상 자신을 그분께 활짝 열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 올바른 상태이다. … 우리가 이것을 열쇠로 삼아 다시 한번 바울이 쓴 서신서들을 읽는다면, 이것이 그의 서신서들에 담겨 있는 진정한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내가 교통한 것에 대한 체험 안으로 들어간다면 무릎을 꿇고 주님께 경배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드릴 것이다. “주님, 이제 저는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당신을 극도로 섬겨야 합니다. 저의 마음과 존재는 당신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오, 주님, 당신의 긍휼과 당신의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제가 어떤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놀라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 그릇은 다만 무언가를 담을 수 있을 뿐이며, 등잔대는 오직 기름으로 다시 채워지기 위해 자신을 열어 둘 수 있을 뿐이다. … 등잔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름을 받아 빛을 비추기 위해 자신을 열 뿐이다. 등잔대는 기름으로 채워지고 그런 다음 무언가를 표현한다. 즉 빛을 비춘다. 사실상 등잔대는 실지적으로 기름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우리 자신을 항상 열어 둔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자신의 행함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기력하고 무심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가 매우 깨어 조심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여러분 자신을 열어 두라. 그분께 날마다 이렇게 말씀드리라.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서 당신께 열려 있습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제 존재의 어떤 부분도 당신께 닫혀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당신께 전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열어 두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성경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계시된 근본적인 노선을 본다면, 이 노선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릇이라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충만한 그릇으로서 우리의 감정을 훈련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여러분의 온 마음으로 주 여러분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그릇인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만 여전히 자신을 열어 두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유 의지의 원칙을 알고 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열어 두지 않는다면,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자신을 열어 두라고 강요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열어 두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0년, 1권, 온전케 하는 훈련, 22장, 367, 369, 372-373쪽)
추가로 읽을 말씀: 위트니스 리 전집, 1980년, 1권, 온전케 하는 훈련, 2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