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Sat)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 (2) – 10 주차

하나님의 걸작품인 한 새사람의 창조주

아침의 누림
3:10-11
10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1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2:19-22
19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나그네와 체류자가 아니라,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신언자들의 기초 위에 건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자신은 모퉁이 돌이십니다.
21 그분 안에서 건축물 전체가 함께 연결되어 주님 안에 있는 성전으로 자라 가고 있으며,
22 그분 안에서 여러분 또한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건축되고 있습니다.

4:1-6
1 그러므로 주님 안에 갇힌 사람인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름을 받았으니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2 모든 일에 겸허하고 온유함으로 또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지며
3 화평의 매는 띠로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십시오.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름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입니다.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고, 모든 사람을 통과하여 계시고, 모든 사람 안에 계십니다.

골로새서 3장 11절에서 … ‘거기’라는 단어는 10절에 있는 새사람을 가리키므로, 결국 ‘거기에는’은 ‘새사람 안에는’을 의미한다. 새사람 안에는 타고난 상태 그대로인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람이 존재할 어떤 가능성이나 여지도 전혀 없다. …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지 새사람에 관한 한 우리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새사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여지만 있을 뿐, 어떤 종류이든 타고난 사람을 위한 여지는 없다.

새사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새사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여지만 있다. 그분은 새사람의 모든 지체들이시며 모든 지체들 안에 계신다. 그분은 새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이시다. 사실상 그분께서 새사람, 곧 그분의 몸이시다(고전 12:13). 새사람 안에서 그분은 중심과 전부이시다.

골로새서 3장 11절에서 ‘모든 것’은 새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지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지체들이시며 이 모든 지체들 안에 계신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 안에는 우리라는 사람을 위한 여지가 없다. 어떤 국적을 위한 여지도 없다. 새사람의 일부인 우리는 자신을 중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독일인이나 다른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 그리스도께서 새사람 안에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또한 우리가 새사람의 일부이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부이다. 새사람의 각 지체와 각 부분은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8, 268-269쪽)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는 로마서 15장 6절에 있는 ‘한입’을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 있는 ‘같은 것을 말하고’와 에베소서 2장 15절에 있는 ‘한 새사람’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로마서 15장 6절과 고린도전서 1장 10절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어떻게 온 교회에 오직 한입만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많은 지체들이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것이 한 지방에 있는 교회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한 지방에 있는 교회 안에는 오직 한입만 있어야 한다. … 그 이유는 오직 한 인격만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리 가운데 너무도 많은 입이 있었던 것은 너무도 많은 인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인격이 있을 때 많은 생각이 있고, 많은 생각이 있을 때 많은 의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 한입과 한 인격만 있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곳에는 경찰관이 없고 우리 각 사람이 전적으로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자유도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또 다른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막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이라고 하자. 그러나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여러분을 ‘찔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말은 “주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뿐이다. 여러분이 다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지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시 찌르시고, 그러면 여러분은 다만 “아멘!”이라고 말한다.

그분은 우리 모두 안에 한 인격으로 계신다. 여러분 안에 계신 인격이 바로 내 안에 계신 인격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리스도라는 오직 한 인격만 계신다. 우리는 새사람 안에서 인격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활하고, … 그분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분이 되신다. … 이것은 우리의 움직임이나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생활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사람의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은 몸이다. 몸으로서 우리는 움직인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고, 따라서 우리는 움직인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이나 우리 자신의 생명에 근거하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힘이신 그리스도께 근거한다. 더욱이 우리의 움직임은 개인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직임이 단체적이다. 우리가 움직일 때는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취하고, 생활할 때는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취한다. 그리스도는 몸 안에서는 우리의 생명이시고, 새사람 안에서는 우리의 인격이시다. 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지체들이고, 새사람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입으로 같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7년, 3권, 한 몸, 한 영, 한 새사람, 5장, 446-448, 451-452쪽)

추가로 읽을 말씀: 위트니스 리 전집, 1977년, 3권, 한 몸, 한 영, 한 새사람, 5,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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