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Thu)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 (3) – 2주차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알고 취함

아침의 누림
2:6
6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14:28
28 내가 갔다가 여러분에게 돌아온다고 말한 것을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11
11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인의 길로 갔고, 삯을 위하여 발람의 그릇된 길로 달려갔으며, 고라의 반역적인 길을 따라 멸망하였기 때문입니다.

1:5, 9
5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가운데서 사람들을 믿음에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9 내가 기도할 때에 항상 여러분을 얼마나 끊임없이 언급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그리고 나의 영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십니다.

16:18, 26
18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그들 자신의 배를 섬기며, 그럴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단순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26 이 비밀이 이제는 드러났고, 신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이방인에게 알려져, 그들이 믿음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4:10
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거라! 성경에 ‘주 그대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0:28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

6:2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많은 제자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음식을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시라고 말한다(요10:30). 태초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처럼 태초에 말씀께서 계셨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으며, 이 말씀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태초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있었다. 이 영광은 아들의 영광이자 사람이 가까이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등하시고, 똑같이 능하시며, 함께 존재하시고, 동시에 존재하신다. 그러나 위격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내재적인 본성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신격 안에서의 안배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셨다고 말한다(빌 2:6). …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은 그분께서 강제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주님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은 그분께서 스스로 주장하시거나 강탈하신 것이 아니다. (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47권, 권위와 순복(상), 5장, 184쪽)

오늘의 읽을 말씀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7절까지가 한 단락을 이루고, 8절부터 11절까지가 또 한 단락을 이룬다. 첫째 단락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신 것에 관한 것이다. 둘째 단락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자신을 낮추신 것에 관한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두 번 낮추셨다. 주님은 먼저 신격 안에서 자신을 비우셨고, 그런 다음 인성 안에서 자신을 낮추셨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의 신격의 존재의 영광과 능력과 위치와 형상을 비우셨다. 주님께서 자신을 비우신 결과, 그 당시에 계시가 없는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분을 단지 평범한 사람으로 여겼다. 주님은 자원하시어 신격 안에서 아들이 되실 것을 선택하셨고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요 14:28)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의 위치는 우리 주님께서 자원하여 선택하신 것이다. 신격 안에는 완전한 조화와 동등함이 있지만, 안배에 따라 아버지는 기꺼이 머리가 되셔야 하고, 아들은 기꺼이 복종하셔야 한다. 아버지는 권위의 대표가 되셨고, 아들은 복종의 대표가 되셨다.

주님의 복종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주님께서 복종하시는 것은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이다. 복종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자신의 신격의 존재의 영광과 능력과 위치와 형상을 비우셔야 했을 뿐 아니라 노예의 모습을 입으셔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주님은 복종이라는 자격을 얻으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종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창시하신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 한 면으로는 권위를 내려놓으셨고 다른 한 면으로는 복종을 취하셨다. 주님은 노예가 되시어 사람으로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순종하셨다. 신격 안에서의 순종은 온 우주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다. 그분은 순종하시어 죽기까지 하셨으며,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러한 죽음은 고통스러운 죽음이자 수치스러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분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셨다.

주님께서 복종을 창시하셨으므로, 아버지는 신격 안에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셨다. 권위와 복종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 그리스도께는 복종의 원칙이 동반된다. 따라서 복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은 또한 복종으로 충만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제가 왜 복종해야 합니까?” 혹은 “저도 형제이고 형제님도 형제인데 왜 제가 형제님에게 복종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사실 이와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하나님의 권위가 완전한 권위이듯이, 그리스도의 복종 또한 완전한 복종을 대표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권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복종은 알지 못한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47권, 권위와 순복(상), 5장, 184-186쪽)

추가로 읽을 말씀: 워치만 전집, 개정판, 47, 권위와 순복(),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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