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Tue)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 (3) – 6주차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

아침의 누림
요일 3:19-21
19 이것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평온해질 것입니다.
20 만일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셔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며,

8:10-11
10 그날들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다음과 같다. 주의 말이다. 나는 내 법들을 그들의 생각 안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것들을 새길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에게 백성이 될 것이다.
11 그들 각 사람은 결코 자기 나라 시민과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부터 가장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10:16
16 “그날들 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은 다음과 같다. 주의 말이다. 나는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에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것들을 새길 것이다.”

28:19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

3:16
16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영을 통하여 능력으로 여러분을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해 주시고,

1:4-5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합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께서, 또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께서,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자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분 자신의 피로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서 해방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요한일서 3장 21절에서 요한의 말은 하나님을 매우 주관적인 방식으로 아는 것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할지 모르지만, 이 절에서 요한은 우리 마음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또는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실지적이신 하나님에 관해 말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제한받지 않으시며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하시는 분이시지만, 또한 우리 마음 안에 계실 만큼 작은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험이 되실 때, 그분은 단지 우주적으로 광대하신 분으로서 보좌에 계시는 분만이 아니라 더욱 우리 마음 안에 시는 분이 되신다.

신약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개인적인 영역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광대한 우주 안에 계시는 분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작은 마음 안에 계시는 분으로 알아 간다.

신약의 관심사는 우리가 우리 존재 안에 거하러 오신 삼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분은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며 우리 마음의 모든 속부분들 안으로 확장되기를 갈망하신다(비교 엡 3:17).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요한일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9, 282-283쪽)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일서 3장 20절에서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주보다 더 크시다고 말하는 대신에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시다고 말한다. 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체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이 있는가? 여러분의 마음은 평온한가? …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방식은 종교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와 우리의 양심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크시고 전능하시며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양심 안에서 우리에게 실지적인 분이 되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양심 때문에 우리에게 불편한 느낌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도 우리에게 불편하신 무언가가 있으심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면서 나는 종종 왜 하나님께서 내 일상생활의 세부적인 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시는지를 의아하게 여겨왔다. 예를 들어 … 만일 내가 아내에게 얼굴을 찌푸린다면, 그분은 나의 양심을 불편하게 하실 것이다. 내가 이런 문제로 그분께 따지려고 하면, 내 양심 안에 계신 그분은 나에게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방식에 대해 보여 주는 한 예이다.

우리가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 갈 때, 그분은 무한하신 분이 아니라 작은 분이 되신다. 어떤 형제는 하나님께 따지면서 어떤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양심을 불편하게 하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형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 보자. “왜 제 양심은 제 아내에 관한 문제로 저를 불편하게 합니까? 아내는 틀렸고 저는 옳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내이고, 저는 다툼을 피하려고 계속 애써 왔습니다. … 그런데 왜 양심은 제 안의 느낌을 문제 삼아 저를 불편하게 합니까? 이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가 하나님께 아무리 따지더라도 하나님은 그의 편을 들어 주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삼일 하나님을 아는 신약의 방식은 개인적이고 상세하며 체험적이다. 신약의 방식은 하나님을 우리 마음 안에 계신 분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렇게 체험적으로 아는 길이 얼마나 보배로운가!

하나님께는 돌보고 처리하셔야 할 일이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은 우리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에 관여하려고 하시는가? 때때로 우리는 그 이유가 궁금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우리 생활의 사소한 일들까지도 관심하신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어떤 형제가 자신의 아내를 대하는 내적태도에도 관심을 가지실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은 너무나 사소해서, 들여다보려면 신성한 확대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에도 관심을 갖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양심이 그 일들로 인해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양심이 평온하지 않을 때마다, 우리는 신성한 통치를 대표하는 양심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큰일에서뿐 아니라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이러한 방식으로 아는 것이 바로 그분을 체험적이고 실지적으로 아는 것이다.(요한일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9, 283-285쪽)

추가로 읽을 말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신성한 삼일성과 함께 삶, 5,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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