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 (3) – 1주차
우리의 미덕들과 하나님의
평안과 우리의 비결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아침의 누림
빌 4:5-6
5 여러분의 관용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빌 3:8-10
8 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
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빌 1:3-7
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나는 항상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5 왜냐하면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교통해 왔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것을 완성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7 내가 여러분 모두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나를 여러분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할 때나, 여러분 모두는 나와 함께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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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바울은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라고 선포한다. 이 말은 바울의 내적 실재에 대한 간증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의 실지적인 표현은 무엇인가? 이 표현은 4장 5절부터 9절까지에 열거된 미덕들로 나타난다. 같은 원리로, 2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제시한다. … 이 본을 따라 사는 생활의 표현은 무엇인가? 그 표현은 4장 5절부터 9절까지에 나온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에 관해 3장에서 바울이 한 말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철학을 유죄판결 하고 문화를 거절하며 종교를 거부하고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면, 그러한 사람의 생활에 어떤 표현이 있겠는가? 다시 한번 … 그 표현은 4장 5절부터 9절까지에서 볼 수 있다.(빌립보서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1권, 메시지 27, 296쪽)
오늘의 읽을 말씀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의 표현에서 첫 번째 방면은 관용이다(빌 4:5). … 두 번째 방면은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에는 관용이 있지만 염려나 걱정은 없을 것이다. …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은 고요하고 평온하고 평화롭고 조용하다. 반대로 혼란스러운 생활은 사탄을 사는 생활이다. 관용은 평온한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것이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기의 법적 권리를 엄격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관용은 인내와 온건함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다. 관용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우거나 논쟁하지 않을 것이다. 할 말이 많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 인내와 온건함이 있을 것이며, 자극하거나 성나게 하는 것에 반응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무리의 자매들이 함께 산다고 하자. 가장 귀한 자매는 가장 관용이 많은 자매일 것이다. 어려움이 생길 때 그녀는 고요하며 조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라도 그녀는 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용이 부족한 자매들은 마음이 상할 때 쉽게 반응할 것이다. …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고요한 생활이다. 그러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용은 바울이 언급한 두 가지 부정적인 것인 이기적인 야심과 헛된 영광과 대조된다. 관용은 또한 불평하는 것과 따지는 것과 반대된다. … 우리에게 이기적인 야심, 헛된 영광, 불평하거나 따지는 것이 있을 때마다 고요함과 평온함과 관용은 없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산다면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을 것이다. 조용한 말 한마디라도 그것을 말할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를 알 것이다. 조용하게 하는 말이라 해도 적절하지 않은 때에 하게 되면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화를 낼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관용을 발휘하여 조용한 말을 할 적절한 때를 기다리라. 특히 결혼한 형제자매들이 이것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다투기를 좋아한다면, 여러분의 말하는 방식을 주의하라. 주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소리 내어 부를 때 분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자신을 진정시키고 속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말하라.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나는 인간 생활에서 상당히 많은 체험을 통과했다. 주님의 주권적인 손 아래서 나는 아주 많은 다양한 환경들을 겪었다. 나는 가난을 경험했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공급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인간 생활의 모든 환경 안에 염려가 있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염려’는 인간 생활을 요약해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다. 인간 생활의 총체는 염려이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염려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그가 염려가 인간 생활의 총체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한 관용이 합당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총체임을 깨달았다. … 따라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관용이 있고 염려가 없는 것이다.(빌립보서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1권, 메시지 27, 297-299쪽, 2권, 메시지60, 337-338쪽)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1권, 메시지 27, 2권, 메시지 61